서울시민힐링프로젝트 맘프로젝트(현 마음:온)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누구에게나 엄마가 필요하다(이하 맘프)를 하다 보면 마법 같이 찾아오는 순간을 경험하게 될 때가 있다. 맘프를 경험한 분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격하게 공감할지 모른다. 어쩌면 유체 이탈을 해서 나 아닌 나 자신을 바라보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혹은 기침과 사랑은 숨길 수 없다던가? 지금까지 평소에 보고 생각하던 것이 아닌 새로운 세계와 맞닥뜨리곤 한다. 최희주(치유활동가 맘프2기)님에게도 그런 이상한 마법을 경험하는 순간이 있었다.
여자 형제가 많은 집안의 맏딸로 태어나 반항하는 사춘기 시절도 없이 집안의 모범이 되어 엄마에 대한 배려로 똘똘 뭉쳤었다. 모범생 증후군이랄까? 심지어 중학교 졸업식 때 어머니가 혼자 오셨는데 어려운 형편에도 불구하고 큰마음 먹어야 사줄 수 있는 중국집으로 데려가시는 것을 뿌리치며 “짜장면 안 먹어도 돼. 사발면 먹고 싶다. 그거 사 먹자.”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왔고 짜장면이 아닌 사발면을 같이 먹었던 기억이 있다. 사실은 엄마 호주머니 사정을 생각해서 한 행동이다. 엄마가 근심 있는 얼굴을 하고 있으면 늘 함께 얘기를 들어주는 딸이었다.
“그러던 제가 최근 2~3년 동안 이유 없이 짜증만 내면서 “엄마, 그렇게 늙은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엄살이야? 운동 좀 하세요. 요즘 그 정도 나이면 다 하는 거야” 등 엄마를 위한답시고 투덜거리며 전화하고, 상처 주는 말을 내뱉고 있었던 거예요. 뭐 지랄 총량의 법칙이 있다던데, 사춘기를 전혀 안 겪고 넘어갈 정도로 사려 깊고 배려심 많던 맏딸이었는데 제가 아마도 제2 사춘기가 왔었나 봐요?”(웃음)
2013년 맘프 나편 1회차 때 실내가 어두워지고 잔잔한 음악과 함께 시가 흘러나왔을 때였다.
“갑자기 중학교 졸업하던 날 그 장면이, 그리고 엄마가 생각났어요. 아! 나의 알량한 배려라는 것 때문에 상처 입었을 엄마가 문득 떠올랐죠. 내가 상대를 위한답시고 한 행동과 말이, 어쩌면 마음의 폭력으로 상처를 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나면서 울컥 눈물이 차올랐습니다.”
남편과 함께 잘나가던 떡집을 운영하다 갑자기 림프샘에 도토리 알만한 종양이 발견되었다. 양성이라서 수술을 하지 않아도 되지만 1년 이상 염증을 약으로 가라앉히는 치료를 받아야 했다. 스트레스를 과도하게 받은 것이 원인일 수도 있다는 말에 아쉽지만 정리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일을 하지 말라는 무슨 계시가 아니었나 싶기도 해요. 치료가 마무리되어갈 무렵 무언가 보람 있는 일을 찾다가 장애아를 위한 미술 봉사 활동을 하게 되었어요. 그것을 시작으로 자살 증후군이 있는 분들을 위한 생명지킴이 활동을 하고 있을 때 담당 사회복지 선생님이 밥만 먹고 오면 된다고 해서 2기로 맘프에 참여 했던거에요.”
당연히 무슨 강연을 듣는 것으로 생각하고 갔는데 그게 아니었다. 우선 나만을 위한 밥상을 받는 것부터 감동이었다. 나를 다시 들여다보는 시간을 보내며 6주가 흘렀다. 그 후 강북구 자서전 편에 참여하고 맘프6기의 리더 치유 활동가로, 어르신 공감단, 치유밥상 등 여러 모습으로 활동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맘프 활동은 솔직히 사회적 경력을 쌓는 것도 아니고 이익을 추구 하는 것도 아니다. 맘프의 이상한 마술, 전혀 몰랐던 사람에게 나의 잊혀졌던 과거의 무엇을 열심히 이야기하고 들어주면서 다른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 옆에서 충고나 조언, 상담을 해주지 않아도 한번 자신에게 빠져 충실해 보고 느껴봐라! 아픈 시간을 집중해서 볼 시간을 가지며 나를 다시 보고 나면 아주 말랑말랑해지는 느낌이 온다. 계급장 떼고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어떤 지위의 사람인지 몰라도 마음결이 비슷한 사람끼리 만나는 것에 대한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다.
치유활동가 박미자님의 인터뷰 전문은 공감토크 2호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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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엄마가 필요하다(이하 맘프)를 하다 보면 마법 같이 찾아오는 순간을 경험하게 될 때가 있다. 맘프를 경험한 분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격하게 공감할지 모른다. 어쩌면 유체 이탈을 해서 나 아닌 나 자신을 바라보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혹은 기침과 사랑은 숨길 수 없다던가? 지금까지 평소에 보고 생각하던 것이 아닌 새로운 세계와 맞닥뜨리곤 한다. 최희주(치유활동가 맘프2기)님에게도 그런 이상한 마법을 경험하는 순간이 있었다.
여자 형제가 많은 집안의 맏딸로 태어나 반항하는 사춘기 시절도 없이 집안의 모범이 되어 엄마에 대한 배려로 똘똘 뭉쳤었다. 모범생 증후군이랄까? 심지어 중학교 졸업식 때 어머니가 혼자 오셨는데 어려운 형편에도 불구하고 큰마음 먹어야 사줄 수 있는 중국집으로 데려가시는 것을 뿌리치며 “짜장면 안 먹어도 돼. 사발면 먹고 싶다. 그거 사 먹자.”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왔고 짜장면이 아닌 사발면을 같이 먹었던 기억이 있다. 사실은 엄마 호주머니 사정을 생각해서 한 행동이다. 엄마가 근심 있는 얼굴을 하고 있으면 늘 함께 얘기를 들어주는 딸이었다.
“그러던 제가 최근 2~3년 동안 이유 없이 짜증만 내면서 “엄마, 그렇게 늙은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엄살이야? 운동 좀 하세요. 요즘 그 정도 나이면 다 하는 거야” 등 엄마를 위한답시고 투덜거리며 전화하고, 상처 주는 말을 내뱉고 있었던 거예요. 뭐 지랄 총량의 법칙이 있다던데, 사춘기를 전혀 안 겪고 넘어갈 정도로 사려 깊고 배려심 많던 맏딸이었는데 제가 아마도 제2 사춘기가 왔었나 봐요?”(웃음)
2013년 맘프 나편 1회차 때 실내가 어두워지고 잔잔한 음악과 함께 시가 흘러나왔을 때였다.
“갑자기 중학교 졸업하던 날 그 장면이, 그리고 엄마가 생각났어요. 아! 나의 알량한 배려라는 것 때문에 상처 입었을 엄마가 문득 떠올랐죠. 내가 상대를 위한답시고 한 행동과 말이, 어쩌면 마음의 폭력으로 상처를 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나면서 울컥 눈물이 차올랐습니다.”
남편과 함께 잘나가던 떡집을 운영하다 갑자기 림프샘에 도토리 알만한 종양이 발견되었다. 양성이라서 수술을 하지 않아도 되지만 1년 이상 염증을 약으로 가라앉히는 치료를 받아야 했다. 스트레스를 과도하게 받은 것이 원인일 수도 있다는 말에 아쉽지만 정리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일을 하지 말라는 무슨 계시가 아니었나 싶기도 해요. 치료가 마무리되어갈 무렵 무언가 보람 있는 일을 찾다가 장애아를 위한 미술 봉사 활동을 하게 되었어요. 그것을 시작으로 자살 증후군이 있는 분들을 위한 생명지킴이 활동을 하고 있을 때 담당 사회복지 선생님이 밥만 먹고 오면 된다고 해서 2기로 맘프에 참여 했던거에요.”
당연히 무슨 강연을 듣는 것으로 생각하고 갔는데 그게 아니었다. 우선 나만을 위한 밥상을 받는 것부터 감동이었다. 나를 다시 들여다보는 시간을 보내며 6주가 흘렀다. 그 후 강북구 자서전 편에 참여하고 맘프6기의 리더 치유 활동가로, 어르신 공감단, 치유밥상 등 여러 모습으로 활동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맘프 활동은 솔직히 사회적 경력을 쌓는 것도 아니고 이익을 추구 하는 것도 아니다. 맘프의 이상한 마술, 전혀 몰랐던 사람에게 나의 잊혀졌던 과거의 무엇을 열심히 이야기하고 들어주면서 다른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 옆에서 충고나 조언, 상담을 해주지 않아도 한번 자신에게 빠져 충실해 보고 느껴봐라! 아픈 시간을 집중해서 볼 시간을 가지며 나를 다시 보고 나면 아주 말랑말랑해지는 느낌이 온다. 계급장 떼고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어떤 지위의 사람인지 몰라도 마음결이 비슷한 사람끼리 만나는 것에 대한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다.
치유활동가 박미자님의 인터뷰 전문은 공감토크 2호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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