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 번째 편지: 익명 님

💌 린린님의 답장
익명님의 글을 읽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던 저의 그때가 떠올랐어요. 좋은 말들은 넘쳐 흐르고 한편으로 그게 옳다는 흐릿한 신념은 있었지만 하나도 제 귀에 들리지 않았던 그때요. 그 시기를 어떻게 지나오게 된걸까. 하나의 명확한 계기를 꼽아보라고 하면 음. 할 수 있는 말은 없어요. 다만 들리지 않았던 말들 중에 그래도 딱 하나씩 간절히 붙잡고 몸을 움직여냈던 기억은 있어요. 삶이니까요. 오르막 내리막이 있는 삶을 살아내고 있으니 언젠가 그때로 다시 돌아가게 될 수도 있겠지요. 그래도 한번 해봤으니 분명 한 발 크게 드러내는 일이 그때는 훨씬 수월할 거라 믿습니다. 문득 익명님에게 감사한 마음입니다. 쉽지 않은 지금일 텐데 이렇게 연결의 손을 내밀어 주셨다는 것이요. 저를 향해 뻗은 손이지만 결국 익명님 자신을 위해 뻗은 손일 테니까요. 그러고 보니 어쩌면 충분히 머무르셨고 이제 몸을 움직여 볼까 하고 계신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곁에 계신다면 먼저 흠뻑 울 수 있게 해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꼭 안아드리고 싶습니다. 어깨를 토닥여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다 그 시기의 서로를 살고 있네요. 닮아있습니다.
두 번째 편지: 나무 님

(*이 편지는 보내주신 이야기의 일부를 담았습니다)
💌 린린님의 답장
엄마를 모시고 길 잃은 아이처럼 울어 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입 벌리고 우느라 눈물, 콧물이 몽땅 들어갔었어요.. “제발 살아라. 제발 살아라. 네 잘못이 아닌데. 제발.” 귓가를 내내 맴돌았던 나무님의 외침. 울컥 쏟아져 나왔을 이 외침, 그 먹먹함에 한참 머물러 있다 보니 이는 간절한 기도라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녀를 향한 기도일 것이고,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던 조카에 대한 기도일 것이고, 선한 아드님을 향한 기도이며, 여전히 큰 슬픔을 품고 있는 나무님을 향한 기도인 것입니다. 아직 남은 그 눈물은 분명 깊은 사랑이고, 이렇게 삶에서 기억되는 일이 본디 애도입니다. 큰 슬픔을 기도와 사랑과 애도로 경험하고 머금는 일, 그리고 그것이 나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 일. 그것이 비로소 고인이 나로 다시 사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나무님은 이 파동의 중심이 어디인지 곧이 바라보고 계셔요. 단단함이 함께 읽히지만, 사람에게는 어느 때고 사람이 필요합니다. 애도의 여정 어디쯤에서 문득 요즘 마음은 어떠신지, 나무님의 오늘이 담긴 편지글을 한 번 더 만날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두 걸음 뒤에서 조용히 따라 걷고 싶은 마음입니다.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는 어둑어둑 새벽이었는데 어느새 오늘의 해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나무님이 사랑하시는 이들의 안녕과 평화를 온 마음으로 더욱 간절히 기원합니다.
📮 마음 우체통에 편지 보내기
첫 번째 편지: 익명 님
💌 린린님의 답장
익명님의 글을 읽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던 저의 그때가 떠올랐어요. 좋은 말들은 넘쳐 흐르고 한편으로 그게 옳다는 흐릿한 신념은 있었지만 하나도 제 귀에 들리지 않았던 그때요. 그 시기를 어떻게 지나오게 된걸까. 하나의 명확한 계기를 꼽아보라고 하면 음. 할 수 있는 말은 없어요. 다만 들리지 않았던 말들 중에 그래도 딱 하나씩 간절히 붙잡고 몸을 움직여냈던 기억은 있어요. 삶이니까요. 오르막 내리막이 있는 삶을 살아내고 있으니 언젠가 그때로 다시 돌아가게 될 수도 있겠지요. 그래도 한번 해봤으니 분명 한 발 크게 드러내는 일이 그때는 훨씬 수월할 거라 믿습니다. 문득 익명님에게 감사한 마음입니다. 쉽지 않은 지금일 텐데 이렇게 연결의 손을 내밀어 주셨다는 것이요. 저를 향해 뻗은 손이지만 결국 익명님 자신을 위해 뻗은 손일 테니까요. 그러고 보니 어쩌면 충분히 머무르셨고 이제 몸을 움직여 볼까 하고 계신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곁에 계신다면 먼저 흠뻑 울 수 있게 해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꼭 안아드리고 싶습니다. 어깨를 토닥여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다 그 시기의 서로를 살고 있네요. 닮아있습니다.
두 번째 편지: 나무 님
(*이 편지는 보내주신 이야기의 일부를 담았습니다)
💌 린린님의 답장
엄마를 모시고 길 잃은 아이처럼 울어 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입 벌리고 우느라 눈물, 콧물이 몽땅 들어갔었어요.. “제발 살아라. 제발 살아라. 네 잘못이 아닌데. 제발.” 귓가를 내내 맴돌았던 나무님의 외침. 울컥 쏟아져 나왔을 이 외침, 그 먹먹함에 한참 머물러 있다 보니 이는 간절한 기도라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녀를 향한 기도일 것이고,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던 조카에 대한 기도일 것이고, 선한 아드님을 향한 기도이며, 여전히 큰 슬픔을 품고 있는 나무님을 향한 기도인 것입니다. 아직 남은 그 눈물은 분명 깊은 사랑이고, 이렇게 삶에서 기억되는 일이 본디 애도입니다. 큰 슬픔을 기도와 사랑과 애도로 경험하고 머금는 일, 그리고 그것이 나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 일. 그것이 비로소 고인이 나로 다시 사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나무님은 이 파동의 중심이 어디인지 곧이 바라보고 계셔요. 단단함이 함께 읽히지만, 사람에게는 어느 때고 사람이 필요합니다. 애도의 여정 어디쯤에서 문득 요즘 마음은 어떠신지, 나무님의 오늘이 담긴 편지글을 한 번 더 만날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두 걸음 뒤에서 조용히 따라 걷고 싶은 마음입니다.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는 어둑어둑 새벽이었는데 어느새 오늘의 해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나무님이 사랑하시는 이들의 안녕과 평화를 온 마음으로 더욱 간절히 기원합니다.
📮 마음 우체통에 편지 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