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의 ‘불심검문’에 당당해지려면
짧지 않은 무명의 세월 끝에 권위 있는 문학상을 받게 된 한 작가의 수상 소감은 짠합니다. 그동안 누가 뭐하냐고 물으면 애매하게 웃고 있을 수밖에 없었는데 이제 그러지 않아도 되니 너무 기쁘다는 거지요.
명절이나 동창회에서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에게 ‘지금 소설 쓰고 있다’고 말했을 때, 사람들이 보였을 반응은 안 봐도 비디오 아니겠어요? 그러니 애매하게 웃고 있을 수밖에요.
살다 보면, 불심검문에 걸려 신분증을 요구받을 때처럼 자기증명의 요구에 내몰릴 때가 있습니다. 무엇으로든 구체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라는 압박입니다. 구체적이고 그럴듯해 보이지 않으면 인정받기 어렵습니다. 남들의 시선도 그렇지만 스스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제 직업적 경험에 의하면, 어리석고 소모적인 일입니다.
불심검문에 걸려 신분증 제시를 요구받았을 때 그것을 거절할 당당한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된 것은 최근입니다. 예전에는 괜히 주눅이 들어 요구하는 대로 신분증명에 응했지요. 자기증명의 요구도 그와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자기를 증명할 구체적이고 그럴듯한 외형이 없다고 주눅들 이유는 조금도 없습니다. 남들의 요구에 휘둘릴 이유도 없지만 그런 식의 자기증명이라는 게 자기존재의 실제가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니까요.
안팎으로 자기증명의 요구가 들끊는 것처럼 느껴져 편치 않을 때 내 존재를 증명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내가 나임을 잊지 않으면 됩니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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